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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재미있는

<고령화 가족> 원작 소설. 영화가 재밌을까? 책이 재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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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사실 내 취향이 아니었습니다.

'다 늙은 가족들이 모이는게 뭐 궁금한가?'

 라는 생각도 했었구요. 그런데, 영화로 만들어졌다길래 좀 궁금해졌습니다. 소설이 얼마나 재밌으면 영화로 만들어졌을까하며 기대가 확 되더군요. 그래서 원작소설을 읽어보았죠.

 

 


<천명관 원작소설>

 

 

 

 

저는 아직 영화로는 보지 않았지만 일단 티저 예고편을 봤을 때 책보다 훨씬 인물이 살아있습니다. 연기라면 어디서 뒤지지 않는 주인공 세명에 엄마역의 윤여정까지, 개념속에 있던 희미한 인물들이 생생하게 걸어나온 느낌이랄까요?

 

 대강의 줄거리


책속에서는 40대의 실패한 영화감독, 둘째의 눈으로 모든 사건이 전개됩니다. 영화에서 박해일의 눈이죠. 그는 집안에서 유일하게 먹물을 먹은 자식으로서 어머니의 걱정거리에서 제외되어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충무로에서 처음 만든 영화가 20억의 빚을 지고 쫄딱 망하므로써 투자자들에게 처죽일놈이 된 상태였습니다. 그는 몇년을 영화도 못만들고 술로 세월을 보내다가 월세도 못내고, 쓸모없는 목숨 끊어버릴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그때 엄마의 전화소리

'얘, 너 별일없니? 집에 닭죽 끓여놨다. 먹으러 올래?'

그 한마디에 그는 죽으려다 말고 닭죽을 먹으러 엄마집에 갑니다.

 

 

여기서부터 사건이 시작됩니다. 120 kg의 돼지같은 50대 첫째 형이 떡하니 엄마집에 얹혀 밥을 얻어먹고 있는 중이었죠. 그는 닭죽을 몇그릇씩 퍼먹고 제집에 가지 않는 둘째를 못마땅해하기 시작합니다. 둘쨰는 첫째에게 얻어맞을때 맞더라도 일단 바락바락 우기며 기어코 엄마집에 얹혀 살기로 합니다. 그 와중에 세째 미연이 눈두덩이에 시퍼런 멍이 든채로 중학생 딸을 데리고 엄마집으로 들어옵니다. 지가 바람핀 주제에 남편 폭력 때문에 못살겠다며 두번째 이혼을 선언하고 엄마집에 얹혀 살기로 하죠.

미성년자 강간하고 감옥갔다가 출소한 후 놀고 있는 큰 형, 영화한편 찍고 놀고 있는 둘째, 이혼이 취미인 세째, 돈만 밝히는 싸가지 없는 조카, 이들은 당당하게 칠순 노모가 화장품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집에 기어들어가 서로 잘났다며 치고박고 싸우며 민폐를 끼칩니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생깁니다. 엄마는 자식들에게 왜 독립하지 않느냐고 무슨 일이 있었냐고 애써 캐묻지 않습니다. 더 힘을 내 아침 밥상을 차립니다. 저녁 퇴근시에는 매일 고기를 사와 자식들 배를 채웁니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왠지 모를 활기를 띠기 시작합니다.

 

개막장 집구석으로 흘러가나 싶은데, 글을 읽다보면 왠지 눈물이 납니다. 한번씩 자식들의 과거 회상장면과 현재가 교차되는데, 그들은 서로를 끔찍히 싫어하는것 같지만 서로에게 무슨일이 생기면 앞장서서 형제들 편을 들어줍니다.

사회는 전쟁입니다. 패배자에게는 한몸 뉘일 집한칸도 내주지않는 매몰찬 곳입니다. 그러나, 엄마는 능력에 따라 자식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립하지 못하는 자식을 더 가슴아파 하죠. 모두 사회에서 매장당할 뻔한 그들은 엄마의 밥으로 대동단결합니다.

에피소드는 점점 더 개막장으로 치닫습니다. 첫째는 조카의 주니어 팬티를 들고 자위를 하다가 둘째에게 들켜 피멍들게 줘터집니다. 그 와중에 첫째는 집앞에서 여동생이 성폭행 당하는 걸로 착각해서 남자애인을 먼지나게 두드려패기도 합니다. 둘째는 조카가 담배피는 걸 보고 엄마에게 이르겠다고 협박해 매달 5만원씩 삥을 뜯어서 용돈으로 쓰는 어처구니 없는 짓을 하구요.

 

이들은 때되면 학교가고, 저녁엔 퇴근하고, 밤엔 과일먹고 티비보다가 잠들 수 있는 평범한 가족이 아닌것에 환멸을 느낍니다. 나중엔 출생의 비밀까지 밝혀지고 점점 개막장으로 치닫지만 그래서 더욱더 노모의 자식사랑이 눈물겹게 다가옵니다.

 

소설은 자식들의 능력과 상관없는 엄마의 평등한 모성을 극대화한것 같습니다. 소설속 엄마 또한 지극히 현모양처가 아닙니다.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도덕성의 경지에 현저히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나, 자식들 입에 밥이 들어가는 것을 한없이 행복해하는 따뜻한 엄마입니다. 소설의 말미에는 자식들이 서로의 실수를 깨닫고 형제들 모르게 서로서로를 도와줍니다. 그 방법도 콩가루 집안답게 굉장히 스펙타클하죠.

 

 

 영화를 보고, 책을볼까?  책을 보고 영화를 볼까?


제 생각에는 영화를 보고 책을 보는 것이 훨씬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예전 '다빈치코드'라는 영화를 보았는데, 책을 읽어서 이미 다 줄거리를 알고 있던터라 영화관에서 지루함의 끝을 달렸습니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아서 원작을 읽어본 경우에는 그 깊이가 달라 책도 색다른 재미가 있었습니다. 영화는 아무래도 대중적이고 이해가 쉽도록 단순화 시켰기 때문에, 뒤에 원작을 읽으면 작가의 철학을 더 섬세하게 알게되는 즐거움이 있지요.

아마 이 영화도 7번방의 선물처럼 코믹인줄 알았다가 눈물 콧물 쏙 빼고 영화관을 나설 확률이 높습니다. 책도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나이 많은 자식들이 칠순 노모집에 얹혀사는 내용이 현대사회에서는 왜 이리 공감이 되는지... 천명관 작가님의 좋은 소설 잘 읽었습니다.